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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지 2년이 훌쩍 넘는다... 그 동안 글 도 안 쓰고 설교도 매주 하는 것이 아니여서 그런지 글 쓰기도 서툴어 지고 있다. 간 만에 생각했던 무언가를 쓰려고 필을 들었지만 필 을 든 채로 멈춤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서두를 뗄지,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서술에 대한 기본 틀도 잡히지 않는다.


 난감 그 자체이다. 


페이스북에 아시는 교수님이 매일 설교와 같은 장편글들을 올리신다. 가끔은 어떤 기사나 뉴스를 통하여 적절한 표현과 설득력있는 문구들로 이해하기 쉬운 글들을 쓰신다. 


하 ~  부럽기도 하고, 전에 나도 한 연결고리만 있으면 모든 것을 설교에 사용할 예화로 엮는 "은사"가 있었는데...


은사도 안쓰니 퇴보하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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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생명을 낳고 죽음이 죽음을 낳는다.또 신비한 것은 생명이 죽음을 이김으로 생명이 죽음을 생명으로 옮긴다. 이 생명은 무엇일가? 죽음을 이긴 생명이 무엇일가? 


인류 역사에 죽음을 이긴 생명은 오직 하나 예수그리스도 뿐이다. 


어떠한 인간도 생명에서 생명으로 가지만 그 생명은 언젠가는 죽음에 도달하여 어쩔 수 없이 생명이 끝난다. 소크라테스는 죽으면서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했다. 과연 소크라테스의 영혼은 죽지 않았을가? 


요한복음 8:24 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라고 하였다. 이 말대로라면 소크라테스는 죄가운데서 죽었다. 


에베소서2: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기서 "죽었던"이란 단어는 형용사로서 상태를 나타내는데 이 상태는 이미 죽어 있는, 생명이 없는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즉 바울은 모든 사람이 이미 죽은 상태, 즉 생명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영혼의 상태는 죽음의 상태로 생명이 없는 상태이다. 즉 생명이 원래 없으므로 생명을 잉태할 수도 없을 뿐더러 생명도 없다. 


하지만 예수는 신성을 소유한, 원래부터 생명이 있는 생명의 소유주로서 그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예수가 자기를 진리요 생명이라고 한 것에 기인하여 그에게만 생명이 있고 그의 신성이 바로 그에게만 생명이 있는 객관적 조건을 만족한다. 


그러므로 생명으로 생명을 영향한다? 는 말은 나의 행실, 나의 삶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뜻 보다는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있어 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연 발생적으로 생명의 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급급하게 어떠헌 것으로 열매을 맺거나 자기의 행실과 노력으로 다른 또 하나의 생명을 낳으려 하지 말고 그 우선으로 자기에게 생명, 즉 그리스도 예수가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없다면 그 노력과 수고가 헛될 뿐 만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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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계곡 피서..

무더운 여름, 여름보다 더 더울 때 도심을 떠나 피서지를 향했다. 휴가철이라 고속도로가 막히는 건 상식이다.. 빈 틈 없이 빼곡히 들어 있는 차들은 좀처럼 행진의 기미를 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