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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나의 개인적 소견-

믿음은 내가 상대방에 대한 태도, 즉 신뢰를 말한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우리가 닥치게 되는 어떠한 일 혹은 사건,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대면에서의 나의 태도를 말한다.

가장 간단하게 예를 들어서 우리가 Taxi 를 탄다, 우리는 그 택시 기사를 전에 본 적이 없고 그가 나에게 신뢰 할 만한 증거들을 보여준 적이 없으며 더욱이 그가 <짝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면허증이 있는가? 어떠한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게 끔 하라, 어떻게 나를 안전하게 목적지에로 보내게 해 줄 수 있는 담보를 주는가?  등 에 대하여 물어보지도 않을 뿐 만 아니라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나의 몸을 그 택시에 담고 내가 이 택시로 말미암아 나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 할수 있다.

우리의 신앙의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태도,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을 창조주, 우리의 전지전능하신 전능자시라는 그러한 태도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육을, 우리의 일생을,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그러한 태도가 그 분을 향한, 그러한 마음이 곧 우리의 믿음이다.

모든 것을 그분이 아시고 그 분은 사랑이시고 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내일에도 우리를 계속 사랑하시며 우리의 삶을 그 분께 모두 맡길 때 그 분이 인도하시고 지켜 주시고 형통케 하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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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림.

ARTICLES/Sermons by Vick 2007. 5. 10. 11:28
일요일 예배 끝나고 목사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몸이 워낙 안 좋은 것을 아시고 목사님은 나한테 침을 놓아 주겠다고 하셨다. 지난 번에도 해 보았는데 작은 침이 손톱눈 아래와 손가락 끝을 찌를 때마다 온 몸의 신경이 도살렸고 그 토록 아팠다(내가 워낙 아픔을 좀 탄다).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사님이 내 건강을 챙겨 주실려고 찾아 오셔서 침을 놓아 주겟다는데 거절을 할 수가 있어야지… 또 한번 X자. 라는 생각으로 그냥 들이 댔다.

오늘 큐티 하면서 문뜩 깨달은 계시다.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 나는 작은 바늘이 손가락을 찌르는 것을 아파하고 두려워 하였다. 그럼 그 크나큰 못이 손에 찔렸을 때 얼마나 아팠을 가?

그리고 나의 <찔림> 은 거퍼 0.001초도 안갔다. 그럼에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는데 그 는 그렇게 그 자리에 무려 몇 시간이나-- 죽기 까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내 병을 치료하려고 목사님께서 찾아 오셨지만, 그래도 될 수록이면 그 아픔을 면하려고 생각 했었다. ………

하지만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준비하고 찾아오셔서 우리들을 위하여, 우리들을 위하여 그 고통을 당하셨고 그 아픔을 당하셨고, 죽음을 당하셨다……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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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라

 

주위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태도와 이식이 어떠한지를 알려고 동료친구 한 사람을 <꼬셔>서 이야기 나누었고 일부러 죽음에 대한 주제로 인도 하였다.

 

예상대로 죽음에 대한 주제를 꺼내니 왜 이렇게 무서운 얘기를 하냐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중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읽게 되였다.

 

자기도 죽음에 대하여 준비를 하고 는 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지는 않고 그냥 정직하고 부지런히 살면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하였다. 그리고 죽은 후 자기가 하던 일에 대한 계승자라던지, 자기 가족을 돌보는 일이라던지 에 대하여 다 마무리 짖는것을 죽음에 해한 준비라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죽은 후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은 전혀 믿지도 않았고 주위 사람들 한테서 가끔씩 들어는 보았지만 그렇게 확실하게 말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것이 문제이다.  << 무식, 즉 알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모르는 것 그 자체가 문제이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모르는 사람도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이고, 알려주는 사람도 있고, 많지만 밎지가 않아서 더 깊게 파고 들어가지 않은 것도 결국은 자기 문제인 것이다.

 

당신은 죽은 후의 세상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어떤 것들을 알고 있으며 어느 만큼 이나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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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말씀드렸다 싶이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여야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씀드리다가 나는 이러한 질문을 흔히 받게 된다.

<<죽으면 끝인데,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준비를 해서 무슨 조숑이며, 또 준비를 한다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가? >>

맞는 말씀이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죽음으로서 끝이고,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종지부를 찍는 다면 우리는 준비할 것이 없으며 준비 또한 필요없다. 그냥 한번 왔다 가는세상 쿨하게, 마음껏 누려보다가 끝내고 마는것이 바람직하고 멋이 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죽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죽음 되에는 또 무엇인가 있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이것을 해명 할려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없는 노력을 하였고 여러가지 종교를 설립하였으며 나름대로 죽음후의 세상을 그렸다.

종교에서 말하는 죽음 후의 세상은 대체로 2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불교계통에서 말하는 중생(重生)이다. 죽은 후 그 영이 살아서 다시 세상에 태여나거나 아니면 동물이 되거나 암튼 세상에 다시 오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는 기독교계통에서 주장하는 최후 심판(审判) 이다. 사람은 죽음을 겪게 되고 죽은후 다시 판결 되여 2부류로 나뉘는데 한 부류는 천국(天国) 으로 다른 한 부류는 지옥(地狱)로 가게 된 다는 것이다.

아무튼 죽은 후에는 또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다시 살던가 아니면 영원한 천국, 영원한 지옥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믿거나 말거나 이 사실은 존재하는 진리로서 누구의 의지대로, 누구의 마음대로 옮겨지고 개변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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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라.

제목만 들어도 기분이 다운되고 머리가 오싹해난다. 하지만 피면할 수 없이 다 겪어야 하는 것이 죽음이고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

역사적으로 세계구조를 바꾸어놓은 위인이라도, 한 나라 대통령이라도, 심지어 일반 시민이라도 다 겪어야 하는 문턱이 바로 죽음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더욱이 준비하는 사람은 드물기도 드물다.

우연하게 블로들을 돌아다니다가 아주 철학적인 사진 한장을 보게 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장 사진은 각기 인생의 한 시점을 그린 사진이다.
어린 아이시절에는  뜨는 해와 같아서 그 잠재력이 무궁하다
젊은 시절에는 한 낮에 비취는 태양과도 같이 정열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노년 시절은 지는 해와도 같이 서서이 노을이 비끼며 <<밤>>이 오기만 기다린다
다음 사진은 죽은 후에는 어두운 밤과도 같다는 환상을 준다.


인생을 아주 잘 묘사하고 개괄한 4장이 그림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중에서 알아야 할 것은 누구나 다 이 인생에 4가지 광경을 겪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일부의 사람들은 그 중에 혹은 3장 혹은 2장의 광경밖에 못 겪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네번째 그림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뜻이다. 내가 그렇게 될지 당신이 그렇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 누구도 보장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이 들어서 죽기 전에 죽음을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죽는 시간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죽을 시간을 아는가?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인생길이고 험하고 걷기 힘든 인생길에서 우리는 항상 죽음을 <준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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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QT 를 하면서 쓰레기에 관한 문장을 읽게 되였다.

쓰레기를 정의 한다면, 쓸모없고, 있으면 거치장 스러운 물건으로서, 오래 두거나 제 때에 치우지 않으면 썩어서 역한 냄새가 나거나 우리에게 불편을 줄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쓰레기들을 아낌없이, 제때에 버리는 등 처리를 한다.

하지만 보이는 쓰레기만 쓰레기인것은 아니다. 우리 마음속 있는 필요하지 않거나 있으면 거치장 스러운 것들이 다 쓰레기이다. 그것들을 제때에 버리지 않고, 제때에 처리 하지 않는다면 우리 의 마음도 따라 썩게 되며 그 역한 냄새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떠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일 마음을 정리하고, 나쁜 생각( 욕심, 교만, 시기, 질투,, ,,,) 을 버리며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쓰레기란 쓸모 없고 필요 없거나 이미 가치를 잃어버린 물건들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일상생활중 쓰레기를 처리 하거나 집을 정리 할 때 쓰레기를 발견 못하여 버리지 않을 때가 있다. 한 물건을 판단 함에 있어서 그 가치판단이 틀려서 혹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유용한 물건을 버릴 때도 많다. 그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는가 도 아주 중요하다...

그것과 마찬 가지로 우리 마음 속에서도 분명 가치가 없는 물건이지만 우리 눈에는 가치가 있고 필요한것으로 보여 쓰레기 임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하고, 혹 버리기 아까워서 품에 <<고이 안고>> 있을 때가 많다.

때문에 우리는 매일 성경을 보고 묵상하고 기도 함으로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하며 우리의 가치기준, 우리의 평가기준, 우리의 목표를 그분에 초점을 맟추어 세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 마음속의 유용한 것과 쓰레기를 분간 할 수 있고 또 그 쓰레기를 제때에, 냄새가 나기 전에 청소해 버려야 한다.
<<날 새롭게 하소서, 내 마음을 깨끗게 하소서..>>

                            오늘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그 분 안에서 새롭게, 깨긋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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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랑 하심은 거룩 하신 말일세,,,,   날 사랑 하심 성경에 써 있네>>

말씀을 전하거나 찬양인도 하면서 <<예수님은 당산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  하면 아주 높게 아멘!~~ 으로 화답한다. 하지만 더 깊게 우리가 평소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정도로 아멘 소리를 내 라 하면 많은 분들의 아멘 소리가 높지 않다.

성경에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다고 기록되여 있다. 인간으로서는 이해가 힘든, 전혀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사랑, 구원의 사랑이 그 분에게서는 죽음으로까지 표현되였다. 이러한 사랑으로 하여 우리는 놀라운 감동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열심히 예수님을 사랑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사랑은 마음 뿐이 아닌 표현이고 행동에 있다. 그냥 사랑을 마음으로만 하고, 생각으로, 감각으로 한다면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고, 상대방도 싫증을 느끼게 되고 깊은 기초를 맺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고 실제적인 사건으로, 행위로 표현한다면 그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더욱 커져 갈 것이다.  

성경에는 <<너의 이웃을 사랑하는것이 <나> 를 사랑하는 것이다>> 고 우리에게 계시를 주고 있다.   여기서 부터 우리는 <삼각형 사랑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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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웨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그 사랑은 전달되기 어렵다. 오직 우리가 위로부터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으므로 그 사랑을 나의 이웃한테 전하고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럴 때 기 이웃을 향한 나의 사랑이 승화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며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끼리 사랑을 하고 나눌때 그 가운데서 기뻐하신다.

오늘도 위로 부터 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열심히 이웃과 나눔으로서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한테로 승화되도록 열심히 봉사하며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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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구원 받은 죄인이 있고
하나는 구원 받지 못한 죄인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바꾸었다. 우리는 그 어린 양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된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있을 때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고 우리가 속죄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어떤 죄나 선이나 의나 그런것들을 보지 않는다. 우리의 힘이나, 권세나, 외모나 이런것 보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다. 우리가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 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있고 그 피가 묻어 있다면 우리는 변화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 삶가운데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흔적이 있고 자욱이 있을 것이며 그 피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삶은 구별 될 것이며 그 구별 된 삶을 하나님이 바라보시며 우리를 의롭다 고 하실 것이다.

또 그피로 하야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되여 질 것이고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 얻고 거룩한 그 분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 갈수 있는 것이다.

이번 한주간도 그 피를 의지하며 승리하자.
그 피를 의지하여 나아 갈때 승리를 하게 되고, 그 분 안에서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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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이사야 53장 5-6절


이번 주일은 고난주간, 즉 예수님이 죽임을 당한 주일이다.  그 때문이여서인지 전과 다르게 좀 마음이 무겁다. 우리를 위해 그 사랑을 베풀고 나와 같은 바라바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였고, 그 고통속에서 승리 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을 가르쳤던 예수님이다.
 죽은 지 3일만에 부활 하셨으며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그래서 오늘은 고난과 부활에 관한 우리의 태도를 보기로 하자.

요즘 들어서 많은 미국 사람들은 지리, 정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TV도 될수록이면 야구, 축구, 드라마, 개그쇼 등 재미있고 입맛에 맞는 것으로 골라 본다. 아프리카의 굶주림, 중동의 싸움, 중국의 GDP 성장 등에 관해서도 무관심이며, 자기 주변에 살고 있는 곳의 이름 마저도 기억지를 않고 있는 미국 사람들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는가고 연구 하고 조사를 해보았더니 자기와 상관 없는 일이기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 그들의 일구동성의 대답이엿다. 그래서 아프리카 누망다에서의 종족기시로 백만명이 죽음에 처해 있건 말건 그들은 동시간에 티비채널을 국내의 미국식 축구 결승전에 돌리고 그것을 위해 숨을 조이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들은 그 부활을 기념 하고 축하하면서 부활절을 계기로 아주 즐겁고 성대하게 보낸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죽음에로 부터의 부활을 느끼고 우리로 하여금 죽음에서 건지신 크나큰 부활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활을 강조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반면에 고난- 죽음에 대해서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다. 될 수록이면 죽음과 고난에 대해서 멀리 하려 하고 특히 설교는 사람들의 입 맛에 맞는, 다들 듣기 좋고 흥이나 하는 부활, 승리, 승천 등에 관해서 하기가 일수이다.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런 미국사람들처럼 자사한 마음이 있기 일수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고생하여서 죽음을 당하였고 누구한테 어떻게 찔림을 당하였으며 그 흘린 피, 흘린 눈물이 얼마이며, 그 당한 아픔과 고통이 얼마인가는 등 과정에 전혀 상관 하지않고 이미 부활은 있고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니 그 영광과 그 기쁨을 마음껏 즐겨봅시다 하는 생각이 있다면 우리의 신앙의 길에서 발걸음을 잘못 디딜 수가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태도를 다시한번 생각 해볼 필요가 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죽음이 없었더라면 부활이 없었을 것이고, 그 부활의 기쁨이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 과정이 없었더라면 그 결과 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활의 기쁨을 느끼기 전에 먼저 예수님과 마음을 합허여 그가 당했던 고통, 그가 당했던 아픔, 그가 흘렸던 눈물, 그가 맞았던 채찍, 그가 쓰셨던 면루관, 그가 지셨던 십자가를 느껴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그 분의 승리를 즐기고 영광을 돌리는 것도 좋지만 그 고통속에서 힘들었던 예수님의 마음, 그 사랑으로 죽음을 대신했던 예수님의 마음을 더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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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04.06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주가 고난주간이군요,,



송계계곡 피서..

무더운 여름, 여름보다 더 더울 때 도심을 떠나 피서지를 향했다. 휴가철이라 고속도로가 막히는 건 상식이다.. 빈 틈 없이 빼곡히 들어 있는 차들은 좀처럼 행진의 기미를 보이지.....